인민체육인 김명남 역도선수

국제 스포츠교류

 

참가거부 이후 1969년 6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68차 총회에서 북한 선수단 명칭에 대한 북한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그 이후 국제대회에서 북한의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북한의 국제체육 교류에의 관심은 1974년 이후 활발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IOC위원 자리를 확보한 것은 1978년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80차 IOC총회에서 당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김유순이 IOC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국제스포츠조직체에 정식으로 가맹한 사례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북한은 90년대 김일성 사망이후 국제 스포츠교류를 극도로 자제하다가 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 대회에 20명의 선수단을 파견하고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 100여명의 선수단을 파견해서 국제무대로 복귀하게 된다. 이후 99년 여자월드컵축구경기 참가로 국제 스포츠교류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다. 2001년에는 중국 상해에서 열린 4개국 국제축구경기대회 참가했다. 또한 2001년부터 평양에서 개최하는 국제대회의 규모도 커졌다. 평양에서 ‘제10회 백두산상 국제휘거(피겨)축전’과 ‘만경대상 국제마라톤경기대회’가 전년보다 더 큰 규모로 개최되었다. 북한 축구대표팀은 중동원정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동 원정경기에서 북한은 요르단을 2대 0으로 대파했다.

북한의 국제스포츠교류에 대한 변화는 2001년 1월호 천리마 기사에서도 감지되었다. 천리마에 따르면 북한은 “체육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며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친선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체육교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개별적 선수들과 체육일군들이 모국에서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가서 체육활동을 적극 벌릴 것”이라고 전망, 북한 체육선수들의 해외진출을 장려할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이 가장 활발히 교류를 하고 있는 대상국은 중국이다. 북한은 북경체육대학교에 매년 10여명의 대학원생과 연구원, 교수를 파견해서 새로운 스포츠정보를 수집해가고 있고 조중 체육교류협약을 통해서 체육단체간 교류도 정례적으로 치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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