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축구대회(2002. 9)

남북체육 교류

 

분단 이후 공식적인 최초의 체육교류 노력은 1964년 동경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문제를 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유로 1963년 로잔(스위스)에서 열린 남북 간의 회담이다.

올림픽대회는 물론 아시아경기대회의 단일팀 구성 논의까지 거의 30년 동안 남북 간의 체육회담은 진행된 바 있다. 30년간의 체육회담의 결과 남북 간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서는 매우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공동선수단이 구성된다면 단기(團旗)로 한반도기를 사용하고 아리랑을 단가(團歌)로 사용하며 공동선수단 구성시 대표선수를 어떻게 선발해서 훈련시킬 것인지 선수단장은 누가 맡을 것인가가 합의된 것이다.

90년, 91년에는 3건의 체육교류가 성사되었다. 사회주의권의 개방과 냉전체제의 붕괴가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1990년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 공동응원단이 등장했다. 그 대회에서 남북한 체육장관이 만나서 10월 11일 평양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 개최를 합의했다.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한 선수가 만나 축구를 하였고 사람들은 감격했다.

1991년에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이 함께 참가했고 9연패에 도전하던 중국을 접전 끝에 3대 2로 꺾고 우승했다. 1992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도 남북 선수가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프랑스 툴롱의 국제청소년축구대회와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축구의 경우도 세계 8강 진입이란 성적을 거두었다.

1990년대 말 체육교류는 기업주도로 이어졌다. 현대는 북한과 합작 사업으로 평양 9,000여평의 부지에 12,335석 규모의 실내 체육관을 건설하여 기부하였다. 동 실내체육관의 기공식을 전후로 남북 농구경기대회가 진행되었다. 삼성전자는 2000년 7월 평양현지공장 설립을 앞두고 평양체육관에 전광판을 기증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통일탁구대회’ 라고 명명한 남북 탁구경기대회를 열었다. 남녀 단복식과 남남북녀, 북남남녀가 짝이 되어 치른 혼합복식 등 5경기가 진행되었다.

2000년에는 6.15공동선언 정신을 살려 시드니올림픽 동시입장이 성사되었다. 남북팀이 단일 국기와 국가, 복장으로 개회식과 폐회식을 치른 것이다. 시드니 남북단일팀이 착용한 단복은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001년 금강산랠리사업(통일염원 6.15자동차질주경기대회로 호칭됨)과 금강산모터싸이클대회가 개최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나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의 참여를 촉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탁구단일팀의 경기 장면(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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