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역도산과 이노끼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은 프로축구나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인기스포츠로 프로레슬링을 기억한다. 프로레슬링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곧 역도산이다. 역도산은 한국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처음에는 스모(일본 씨름)를 했다가 나중에 레슬링선수가 되어 세계선수권자가 되었다. 특히 1970년대 레슬링의 제왕인 미국의 루테즈선수를 꺾고 우승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38년 함경남도 흥원군의 어촌마을에 살다가 일본인 모모다 이노스케에 의해서 발탁되어 반강제로 일본 스모선수로 데뷔했다. 그의 본명은 김신락으로 역도산의 딸이 북한에 살고 있다. 전 체육상인 박명철은 역도산의 사위라고 한다. 역도산은 43세의 나이에 깡패의 습격으로 칼을 맞고 수술 중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남한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남한에서 역도산이 단지 재일교포로 알려졌지만 북한에서 역도산은 대단한 체육계의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종합잡지인 〈천리마〉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역도산의 일대기를 소설화해서 인기리에 연재했다.

역도산의 이야기에 빼놀 수 없는 것은 일본인 선수 이노끼와의 인연이다. 이노끼 간지 선수는 1943년생으로 브라질 쌍파울로의 농민시장에서 짐꾼 노릇을 하다가 전 브라질체육경기대회에서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에서 우승해서 일본계 이민들 사이에 유명해진 인물이다. 17살 때 브라질에 원정 왔던 역도산의 눈에 띠어 일본에 와서 〈역도산훈련관〉에서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이노끼는 역도산의 제자인 셈이다.

그는 1967년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국제복식경기선수권 타이틀을 보유했고 1969년에 프로레슬링연맹전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이후 1971년 3월 미국 로스앤젤리스 프로레슬링 UN 중량급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노끼는 일본스포츠평화당 당수이자 참의원 의원으로 1971년부터 전일본프로레슬링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프로레슬링을 통한 세계 평화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5년 평양에서는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신일본프로레슬링주식회사의 공동 주최로 〈평화를 위한 평양국제체육 및 문화 축전〉이 열렸다.

이노끼 간지는 생애 마지막 경기를 평양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에서 보여준 이유를 역도산과의 귀한 인연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노끼는 이 대회에서 세계프로권투선수권 보유자였던 조지 포먼과 경기를 했다. 이 축전에는 무하마드 알리도 초청되어 참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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