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화사비>

 

 

고려의 수도 개경에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사찰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규모가 수천 칸에 이르는 것들도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개경의 불교를 마지막으로 사찰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원칙처럼 되었고, 오늘날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문화가 산간불교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태조 10찰 창건을 시작으로 태조 때 개경에는 끊임없이 절이 창건되었다. 이처럼 개경에 들어서는 사찰들은 고유의 종교적 역할과 함께 도시개발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화엄종ㆍ법상종ㆍ천태종ㆍ선종으로 대표되는 고려불교 4대 종단의 중심사찰도 개경에 있었다. 화엄종의 경우 처음에는 영통사가 중심이 되었으나 흥왕사가 창건된 뒤에는 고려 멸망까지 그곳이 중심이 되었고, 법상종의 경우는 현화사가 중심사찰이었다. 선종은 보제사가 중심이 되어 선종을 대표하는 모임인 담선법회가 열렸으나 개경 환도 이후 일연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광명사가 중심사찰이 되었다. 의천은 천태종을 개창하고 국청사를 창건하였다. 이렇게 개경은 불교사상의 중심지였으며, 각종 불교 사업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초조대장경이 간행된 절도 개경의 현화사였으며, ‘속장경’이 간행된 곳도 개경 남부의 흥왕사였다.

그러나 전통시대 수도에 위치한 사찰이 단순히 종교적ㆍ문화적인 역할만을 했을 리는 없다. 도성 중앙, 시가지 곁에 자리잡고 있었던 보제사(후에 연복사로 개칭)는 당사(唐寺), 또는 대사(大寺)로 불렸다. ‘대사’라는 별칭만큼이나 큰절로 건물이 천여 채나 되었고, 절 안에는 세 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높이가 200척이 넘는 5층탑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본 바로는 보제사의 정전인 나한보전은 왕의 거처를 능가할 만큼 웅장하였고, 법당과 승당은 100명의 인원을 수용할 만큼 컸다고 한다. 보제사와 같이 남대가를 중심으로 한 개경의 중앙부 또는 왕궁의 바로 근처에 우뚝하게 위치한 대규모의 절들은 수도 개경의 모습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역할도 하였다.

 

<불일사터>

 

개경의 큰절 중에는 왕실의 원찰로 창건된 경우가 많았다. 951년(광종 2) 광종은 개경에 두 개의 원찰을 건립한다. 하나는 자신의 아버지 태조의 원찰인 봉은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인 태조비 신명왕후의 원찰인 불일사가 그것이었다. 광종대 이후 고려에서는 자신의 부왕이나 모후 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왕후를 위해 원찰을 경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생전에 자신의 원찰을 창건하는 공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경에 세워진 절은 원찰을 매개로 왕실이나 귀족관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최충헌이 집권했을 때에도 개경의 승려들이 연합하여 무력행사를 하여 최충헌과 충돌하였다. 당시 병력으로 동원된 이들은 사찰의 승려와 사원에 예속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궁궐 주변과 십자로, 그리고 황성 근처에 위치한 사찰들은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고려의 왕은 절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왕이 절에 머무는 동안 절은 자연스럽게 정치공간이 되면서 이궁으로, 때로는 관청으로 기능하였다. 나성 밖 즉 개경 중심부에서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사찰들도 정치적인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귀법사ㆍ현화사ㆍ흥왕사ㆍ국청사ㆍ천수사 등의 사찰들은 대부분 나성 밖 사교에 위치하였는데, 개경을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하면서 교통과 수도 방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개경의 불교는 이렇게 다양한 종교적ㆍ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세속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나무가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넓은 경내는 도시인들에게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였고, 연등회와 팔관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도량과 각종 재(齋)와 같은 크고 작은 불교행사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개경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거대한 축제였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각종 장식과 음악, 연희는 도시민들에게 오락과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각 사찰에서는 경전과 교리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고려불교 나름의 철학과 사상이 발전하고 만개하였다. 한편으로는 선(禪)수행에 몰두하기도 하였으며, 대중들을 모아놓고 법회를 열어 불교의 교리를 설파하고 수행법과 염불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개경에 사는 사람들은 절을 찾아가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으며, 망자(亡者)를 떠나보내고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아름답게 단청을 칠한 장대한 사원의 건물들과 그 안에 봉안된 황금의 불상과 보살상, 화려한 불화와 금과 은으로 쓴 경전 등은 멋들어진 주위 풍광과 어우러져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장관이었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다양한 활동들이 사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경의 사찰은 도시에 함께 어울려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합해 주고, 한 나라의 서울을 수도답게 꾸며주는 기능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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