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정치

 

북한음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정치적 민감성’이다. 그리고 일찍부터 “음악은 정치사상적 무기로써 인민의 이익과 혁명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해졌기 때문에, 음악이 정치성을 띠고 또 음악이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음악정치’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이 말을 둘러 싼 배경과 의미가 새삼 관심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음악정치’란 말은 2000년 2월 7일 평양에서 열린 인민무력성 집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집회에서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을 비롯하여 인민군 고위 장성들은 토론을 통해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그 어느 시대에도 있어보지 못한 우리식의 특이한 음악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음악정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온갖 시련과 난관을 노래로 이겨내며 강성대국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는 우리 인민의 영웅적 기상은 김정일동지의 음악정치가 가져온 자랑스런 결실”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음악정치’란 용어는, 90년대 초에 등장한 ‘인덕정치’와 ‘광폭정치’, 90년대 말에 등장한 ‘선군정치’와 ‘과학중시정치’에 이어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음악을 통해 당면한 온갖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사회주의건설을 향해 매진해나간다”는 일종의 김정일 식의 통치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후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음악정치에 관해 언급해 왔는데, 그 주된 내용은 김정일이 음악을 사상이나 총대처럼 중시하고 음악을 통해 전체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그 위력으로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왔다는 것이다. 즉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음악은 때로 수천, 수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 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근로현장에서 음악으로 생산을 독려하는 경제선동방식을 음악정치의 한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중요한 정책을 노랫말에 담아 전하는 것을 음악정치의 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공식 석상에서 연설 대신 하는 공연도 음악정치의 한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에서 늘 견지해 온 것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구호화’, ‘개념화’, ‘체계화’ ‘논리화’하였다는데 그 중요성이 있으며, 그 개념은 현재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데 또 다른 중요성이 있다. 즉, 현재 북한은 음악정치에 대해 여러 가지 논리적 보완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김일성의 통치방식과는 차별화 된 논리 개발의 필요성 때문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일에 의해 온갖 시련과 난관이 극복되고 강성부흥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적 의미의 통치 구호 중의 하나가 ‘음악정치’라는 말로 개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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