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영화제작시설

영화제작시설과 기술

 

1945년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한국의 영화 자본과 영화인들은 거의가 서울에 몰려 있었다. 따라서 북한 영화의 시작은 자본도 인력도 없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소련의 원조와 신생 사회주의 국가에 우호적이었던 유럽 쪽의 작은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북한 영화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 동안 진행된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파괴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실정은 남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북한은 정책적으로, 또 집중적인 계획아래 영화를 육성하기 시작했으며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남한보다 시설과 기자재 면에서는 월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영화 제작 시설은 북한의 영화 촬영소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표적인 촬영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일제 때 일본인이 운영했던 양말공장을 김일성의 지시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전쟁 때 파괴된 후 김정일에 의해 확장 건축되었다고 한다. 부지는 약 100만㎡이며 연건축면적은 10만㎡로서 실내 촬영장, 촬영, 녹음, 편집, 특수 촬영 설비, 필름 가공 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1955년에 이미 스크린 프로세스(배경화면을 합성할 수 있는 설비) 시설을 마련했으며 80년대 초반에 이미 자동으로 조절되는 조명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남한에서는 90년대에나 가능했던, 카메라에 직접 모니터를 연결시켜 보는 장비가 있었다고 한다. 야외촬영소는 조선 거리, 중국 거리, 일본 거리, 서양 거리, 남한의 서울과 광주 그리고 농촌 마을 등을 갖춘 세트 시설이 있다. 이 외에도 조선인민군 4.25 예술영화촬영소, 조선기록영화촬영소 등이 있으며 특히 신상옥 감독이 총장으로 있던 신필름영화촬영소는 연건평 2만평이 넘는 대규모 시설을 목표로 건립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 기술은 여전히 재래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로 컴퓨터 그래픽은 조금 생소한 실정이고 특수 효과 역시 외국 스탭들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고 한다. 현상 기술은 북한 영화계의 특성상 지방 등에 내려보낼 많은 필름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연색과 흑백 필름을 동시에 사용하는 현상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필름 등의 재료는 주로 동구 제품을 사용했고, 특별한 경우에는 코닥과 후지 필름 등으로 찍은 후 서독이나 일본 등에서 현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실정을 거의가 1980년대 상황이므로 현재는 얼마나 기술력이 발전했는지 알 수 없지만, 90년대의 북한 영화 역시 별다른 화질 개선 등의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한편 남한의 경우에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획기적인 기술 발전을 보이고 있다. 남양주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종합촬영소가 세워졌으며, 서구의 현대적인 장비와 기자재들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으며 기술 스탭들의 역량 또한 상당히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필자 : 이효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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