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에 평양에는 문학 조직이 없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문학예술가 조직이 있기는 하였으나 38선 이북을 통괄하는 그러한 조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양에 문학예술가 조직이 들어서기는 1946년 3월 북조선예술총연맹이 생기면서부터이다. 해방된 후 남북의 문학가들은 처음에 전국적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12월 13일에는 서울에서 남북의 문학인들이 모여 조선문학동맹 결성대회를 가졌고 이것은 비록 38선으로 나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문학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 2월 8일 조선문학자대회가 열렸는데 이 과정에서 문학가들 사이에는 심한 내분이 일어났다. 1945년 12월 13일 결정한 사항의 연장선상에서 이 문학자대회가 열렸지만 실제로 일부 문학인들은 그 이전의 결정을 무시하고 새롭게 조직을 결성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서울중심주의를 노정하면서 38선 이북을 지부 정도로 취급하게 되자 38선 이북에 있었던 문학가들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1946년 3월에 만들어진 북조선예술총연맹이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문학가들
이기영, 한설야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조직은 서울의 조선문학가동맹과 차별성을 띠면서 진행되었다. 그해 10월에는 이름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고쳤다. 이 조직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전쟁 중이다. 1951년 3월에 이르러 전쟁을 전후하여 남북 사이에 문학가들의 이동이 생기자 이를 반영하여 남북 문학가 사이에 통합이 이루어졌다. 조선문학가동맹을 주도하였던 임화 등이 월북하게 되자 더 이상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과 조선문학가동맹이 참여하였던 남조선문화단체총연맹이 별개로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합동하기에 이르러 이름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에 문학과 그 외의 예술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여 장르별로 분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문학인들은 조선문학가동맹을 만들어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1961년 다시 뭉치게 되어 이름을 예전처럼 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회복하였고 지금까지 이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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