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천의 시집, <백두산>
해방 직후 북한의 문학은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 위에서 나왔다. 일제말 초국가주의 파시즘의 강압 하에서 노예언어만으로 자기를 표현하였던 데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또한 냉전적 분단구조가 정착하는 1948년 이후의 상황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였다. 과거 카프 문학을 하던 작가든 혹은 그와는 무관하게 활동했던 작가든 구별 없이 이 시기의 작가들은 민족문학의 지향 위에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펼쳤다.

8·15 직후 북한의 문학이 가장 많이 다룬 것은 무엇보다도 해방 후 급속하게 변한 당대 현실이다. 격동하는 현실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시인들은 자신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어두웠던 과거와 밝은 현재 사이의 대조는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이었다. 문학인들은 그가 농촌에 살고 있든 도시의 한 가운데 살고 있든 아니면 공장거리에서 살고 있든 관계없이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시로 노래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일제하의 억압적인 분위기가 사라진 들판에서 농민들이 앞으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렜는데 김순석의 ‘산향’, 정문향의 ‘푸른 벌로 간다’, 민병균의 ‘재령강반에서’, 이호남의 ‘지경돌’ 등은 일제하의 숨이 막힐 듯한 폐쇄적 분위기와 해방 후의 자유로운 공기를 대조시키면서 변화한 농촌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것은 비단 농촌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고 공장지대를 비롯한 노동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과거 일제 하에서 일본인들은 고급 기술은 자기들만 소유하고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단순한 손노동에 종사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일제 말의 파시즘이 강화되면서 생산력을 증강하기 위한 장시간의 노동과 비인간적인 착취로 인하여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심한 고통을 감내하여야만 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이하였을 때 자유로움의 감격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시인들은 매우 고양된 어조로 노래하였다. 안용만의 ‘축제의 날도 가까워’는 바로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조규의 ‘기차’는 여러 지방의 방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기차 안의 풍경을 통하여 해방이 일반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아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 직후 당대의 북한 현실을 반영한 문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제도의 개혁으로 인한 삶의 변화이다. 이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났는데 특히 농촌에서의 토지개혁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터라 시인들은 이를 자신의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김광섭의 ‘감자 현물세’는 자신들에게 땅을 주어 이렇게 살게 해준 국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읊은 것으로 당시 농민들의 생활감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김우철의 ‘농촌위원회의 밤’ 역시 토지개혁을 다룬 것으로 그 과정에서 농민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되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조규의 ‘쇠콜령 고개’는 매우 개성적인 시로서 빼놓을 수 없다. 이기영의 <개벽>, 최명익의 <맥령>, 그리고 이태준의 <농토> 등의 소설은 토지개혁을 다룬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삶의 제반 변화는 비단 농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8시간 노동제가 발표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화한 노동현실에 대해서도 시인들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지만 이제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노동을 한다는 보람과 열정에 차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삶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 김상오의 ‘기사’를 비롯하여 이정구의 ‘노동법령송’, 김북원의 ‘용광로 앞에서’, 그리고 정문향의 ‘대의원이 나서는 구내’ 등을 들 수 있다. ‘기사’에서는 일제하에서의 기사가 아니라 스스로 공장의 주인이 된 기사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고, ‘대의원이 나서는 구내’는 노동자들이 어엿한 사회의 한 영역을 지키는 주인으로서의 자신의 성장과 책임을 느끼는 모습을 잘 노래하였다. 노동자가 대의원 후보로 당당하게 나서는 과정에서 취한 이 시의 발상은 바로 변화한 노동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해방 직후 북한의 문학에서 한 흐름을 차지하는 것은 소련과의 친선 그리고 국제주의의 문제이다. 이 시기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쓰여진 많은 작품들이 1949년에 발간된 <영원한 친선>이란 시집에 모아져 있다. 박세영의 ‘소련군대는 오는가’, 강승한의 ‘여사에서’, 이정구의 ‘영원한 악수’, 백인준의 ‘니꼴라이 붉은 군대에게 드리는 노래’, 김상오의 ‘첫눈’ 등이 있다.

많은 시인들이 이 주제에 관련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소련과 북한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한 작품들을 제외하고 보면 의미를 남기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일제의 긴 압제에서 풀려나게 하는 데 미국과 더불어 한 몫을 했던 소련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선진적 근대로서의 소련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 시기 소련과 북한의 관계를 다룬 작품 중에서 가장 문제성을 가졌던 작품은 한설야의 ‘모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련군의 형상에 대해 소군정이 항의를 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소련문화와 조선의 문화가 만났을 때 그 사이에 개재하는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못 중요한 것이었다. 한설야가 이 점을 결코 지나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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