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박봉주·김덕훈 ‘부각’, 김여정은 ‘잠행’…이유는? (2020.08.31)

北, 박봉주·김덕훈 ‘부각’, 김여정은 ‘잠행’…이유는?

지난 20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일부 측근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힌 지 열흘 정도 지났습니다. 이를 두고 과연 ‘위임통치’라는 용어가 정확하냐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핵심 측근들에게 권한을 일부 위임했다’ 정도의 해석에는 이제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당시 ‘권한을 일부 위임받은’ 인물로 거론된 것이 김여정 제1부부장을 비롯해 경제 분야의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군사 분야의 최부일 당 군정지도부장과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최근 박봉주와 김덕훈은 최근 잇따라 독자적으로 현지시찰에 나서는 등 그 활동이 크게 주목받는 모양새입니다. 반면 김여정 제1부부장은 8월 한 달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대조를 이룹니다.

■ 박봉주·김덕훈, 노동신문 1면에 이례적 등장

30일 자 북한 노동신문 1면에는 평소 보기 드문 장면이 실렸습니다. 1면 머리기사로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가 각각 황해남도의 태풍피해복구 상황을 현지 시찰했다는 기사가 나란히 실린 겁니다. 두 사람이 태풍 피해 현장에서 현지 관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들도 함께 게재됐는데요.

30일 북한 노동신문 1면.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의 태풍 피해 현장 시찰 관련 기사가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30일 북한 노동신문 1면.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의 태풍 피해 현장 시찰 관련 기사가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

노동신문은 “박봉주 동지는 옹진군 읍협동농장, 랭정협동농장, 강령군 읍협동농장, 연안군 오현협동농장 등에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며 “피해 복구 사업에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하기 위한 조직 정치사업을 짜고들데 대해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김덕훈 동지는 강령군 오봉협동농장, 벽성군 장현협동농장과 옹진군, 과일군, 재령군의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태풍피해 복구에 나서는 실무적 문제들을 토의 대책하였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노동신문 1면 머리기사 자리는 지금까지 사실상 최고지도자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까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활동 등을 소개하는 데 주로 할애되어 왔고, 별다른 활동이 없는 날은 외국 정상과 주고받은 축전의 전문 등을 싣거나, 그도 아니라면 아예 당의 정책과 노선을 설파하는 노동신문의 사설이나 논설이 실리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매우 이례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박봉주와 김덕훈의 현지시찰 기사가 그 자리를 차지한 건데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금까지 간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을 대표해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위해 출국하거나 회담 후 귀국할 경우 상임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적은 있다”며 “그러나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나 내각 총리의 공개활동 기사를 사진과 함께 1면에 소개한 적은 그 사례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절대권력과 핵심 사안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보유하면서도 핵심 간부들에게 담당 분야에서의 정책 결정에 대해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결정의 결과에 대해 승진이나 강등 등과 같은 방식으로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김정은의 ‘위임통치’가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이번 한 번 뿐이 아닙니다. 국정원의 ‘위임통치’ 보고가 나오기 전날인 지난 19일 노동신문은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신임 내각총리가 각각 강원도와 황해북도의 수해 현장을 찾았다고 보도했고, 25일에는 박봉주와 김덕훈이 함께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을 위한 대상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형식이 아니라 잇따라 독자적으로 현지 시찰에 나서는 등 두 사람의 위상과 역할은 한층 드러나는 분위기입니다.

■ 김여정은 ‘잠행’… 8월 공식 석상 등장 없어

반면 국정원이 ‘사실상 2인자’라고 보고한 김여정 제1부부장은 8월 한 달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최근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7월 말입니다. 7월 27일 자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정전협정체결일 67주년을 맞아 군 주요 지휘관들에게 권총을 수여했다고 보도했는데, 그때 옆에서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을 옆에서 보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군 주요 지휘관들에 대한 권총 수여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보필하고 있다. [사진 출처: 2020.7.27. 조선중앙통신]김여정 제1부부장이 군 주요 지휘관들에 대한 권총 수여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보필하고 있다. [사진 출처: 2020.7.27. 조선중앙통신]

그리고 그 다음 날인 7월 28일, 전날 평양에서 개최된 ‘전국 노병대회’ 소식을 보도한 조선중앙TV 화면에도 김여정 제1부부장의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주석단의 한쪽에 앉아있는 모습이었고, 김 위원장과 함께 등장하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습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7월 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회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한 모습. 북한 조선중앙TV 화면 캡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7월 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회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한 모습. 북한 조선중앙TV 화면 캡쳐

이후 8월 한 달간 김여정 제1부부장은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특히 지난 25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정무국회의 장면을 보도한 사진에도 김여정 제1부부장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간 김 위원장이 주재하는 각종 주요 회의에 참석해 수첩을 펴고 메모를 하거나 곁에서 보필하던 모습이 자주 보이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이른바 ’2인자’로 거론되는 것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이나 남한 등 외부 세계로부터 2인자나 후계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언행에 신중을 기하려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시점에서 북한은 내치에 집중하고 있는 데다 최고지도자 중심의 유일 영도체제인 북한에서 아무리 동생이라 하더라도 후계자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신뿐 아니라 최고지도자에게도 부담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양 교수는 “그런 점을 김 제1부부장 자신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자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내년 1월 예정된 당 대회 등을 전후해 새로운 대미·대남 정책이 나온다면 그쯤 다시 그의 위상과 역할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난 25일 당 정치국회의의 성격이나 의제 자체가 김 제1부부장이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당시 회의의 주요 의제는 코로나19 방역과 태풍 대비였는데, 김 제1부부장의 담당 분야와는 사안의 연관성이 낮다는 겁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남과 대미 분야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방역과 태풍 대비가 주요 의제인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보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대남·대미 부문보다는 대내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물론 김여정이 남한에서 2인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일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김여정은 ‘로열패밀리’라는 예외적 지위를 가진 인물인 데다, 최고지도자가 특정 분야에 권한과 책임을 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논란을 의식해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볼 여지는 많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국정원의 ‘위임통치’ 보고로 한바탕 논란이 지나간 뒤, 김정은식 ‘위임통치’가 어떤 방식인지, 또 통치 방식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지 등을 놓고 세간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진행되어 온 ‘당 중심의 통치’ 등 일련의 변화들도 새삼 주목받고 있는데요. 지금 당장 평가를 하기는 성급한 만큼, 김여정 제1부부장을 비롯해 ‘권한을 일부 위임받은’ 인물들의 행보는 어떤 식으로든 당분간 대내외적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효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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