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년사’ (2020.01.04)
[클로즈업 북한] 집권 후 첫 생략 ‘北 신년사’
 
 
 
 
[앵커]

2020년 새해 첫 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쏟아진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한 해 정책 방향은 물론 대남, 대외메시지까지 담겨 있는 만큼 북한을 가장 먼저 들여다 볼 수 있는 청사진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신년사를 생략하고 전원회의로 대체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신년가 가지는 의미와 김정은 위원장 집권 7년 만에 신년사를 생략한 의도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2020년 1월 1일 새벽 한시.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의 대표 아나운서 리춘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해 새해 첫날 방영되는 리춘희 아나운서의 새해 인사 코너다.

[리춘희/북한 방송원 : "사연도 많았고 눈부신 승리도 많았던 2019년을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이 시각. 우리당과 국가무력의 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부디 안녕하시기를 축원하며 새해 첫 인사를 삼가드립니다."]

그러나 같은 날 아침,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는 끝내 발표 되지 않았다.

김위원장 집권 이후 7년 만에 육성 신년사를 전격 생략 한 것이다.

전원회의 발표문으로 대신한 2020년 신년사.

이를 두고 북미협상 결렬에 대한 압박과 강력한 내부 결집이라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만약에 김 위원장이 직접 말하는 신년사를 발표했다면 김 위원장의 도발 의사라든가 미국과의 대결 의사 또 각종 대외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주체가 김 위원장이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이것은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죠. 전원회의 결정문으로 본인은 한 발짝 물러서고 있고 제3자 화법으로 북한의 입장을 발표함으로써 정면대결구도를 유지하면서도 또 대화 국면 을 남겨두는 이중적인 일종의 화법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46년, ‘신년을 맞이하면서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연설로 시작된 북한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신년사는 당·정·군이 한 해 동안 추진해야 할 주요 정책이자 최고 권력자의 교시로 여겨져 왔다.

김일성 주석은 사망 해인 1994년까지 거의 해마다 직접 신년사 연설을 했을 만큼 신년사를 중요시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의 육성으로 전달되는 만큼 대남메시지와 대외 정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역할도 했다.

국민적 기대 속에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1993년.

그러나 그 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 선언으로 한반도는 ‘1차 북핵 위기’를 맞는다.

북·미 간 신경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 해를 보낸 뒤, 김일성은 이듬에 신년사에서 남한 정부에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일성/주석/1991년 신년사 : "남조선 당국자들은 외세에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 군사연습을 빈번히 벌리고, 우리의 핵 문제를 구실로 군사적 대응이니 국제 공조식이니 하면서 북남 관계를 위험한 국면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이러한 이른바 문민정권이라는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역대 군부독재정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육성 신년사는 2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내내 신문의 공동 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듬해에도 리춘희 아나운서의 신년사 대독이 있을 뿐이었다.

[2001년 신년사/아나운서 대독 : "지난해에는 조국통일위업 실현에서 새로운 전환적 국면이 열린 뜻깊은 해였다. 역사적인 평양 상봉이 마련되고 , 6.15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온 삼천리강토가 통일의 열기로 들끓게 되었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3년 신년사 : "친애하는 동지들, 영용한 인민군장병들과 사랑하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 그리운 동포 형제여러분! 원대한포부와 최후 승리에 대한 신심에 넘쳐 새해 2013년을 맞이합니다."]

2013년 1월 1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육성 신년사가 19년 만에 다시 전파를 탔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꼭 빼닮은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

그러나 집권 2년차, 짧은 후계과정을 거치고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선과 몸짓은 어딘가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체제를 완성해 가면서, 김 위원장의 모습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신년사 역시 해를 거듭 할수록 할아버지 따라하기’를 넘어선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해 갔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7년 신년사 : "하루하루를 격동적인 투쟁의 날과 날로 빛낸 2016년을 보내고 새해 2017년을 맞이합니다."]

가장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7년이다.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쓰고 등장 한 김정은 위원장은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신년사를 연설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선대를 언급하는 빈도수가 확연히 줄었고, 수소탄, 핵탄두, 대륙간탄도로켓 등의 핵실험에 관한 구체적인 단어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7년 신년사 : "첫 수소탄시험과 각이한 공격수단들의 시험발사, 핵탄두폭발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하여..."]

그리고 그해 김정은 위원장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핵무력 완성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화성 15형의 시험발사까지 강행했다.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16년 이후 즉 당대회 7차 당대회 기점으로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제도화, 안정화 됐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17~18년에 나오는 신년사 내용을 보면 연출도 다양해지고 권력의 안정화된 측면이 신년사에도 반영된 측면이 있습니다."]

2018년을 앞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심각하게 우려되던 상황.

김정은 위원장은 또 한 번 신년사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킨다.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 당국의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8년 신년사 : "북남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합니다. 민족적 화해와 통일을 지향해나가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여야 합니다."]

이에 우리와 미국 정부가 화답하면서 18년만의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잇따라 열렸다.

신년사가 대외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 수단으로 거듭 난 것이다.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2017년에 북한이 핵무력 보유 선언을 하고 이제 핵무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체제 안전 보장의 한 발판을 마련하고 세계로 나가겠다라고 결정을 한 거죠. 이게 2018년 신년사를 통해서 드러난 겁니다. 그래서 세계를 향해서 국제협상무대에서 당당하게 하나의 주체로서 전략적 지위를 가지고 움직이겠다라고 선언한 게 2018년 1월 1일 신년사였기 때문에 그때 내용이 주목을 받았던 겁니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화면을 채우는 노동당 청사.

양복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고, 환하게 웃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뒤를 따른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9년 신년사 : "온 나라 가정들에 사랑과 희망, 행복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형식면에서 가장 파격적으로 평가된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다.

매년 단상에서 발표했던 것과 달리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그려진 집무실 소파에 앉은 것은 물론, 마치 앞에 상대가 있기라도 한 듯 시선 처리까지 신경 쓴 모습.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김 위원장은 서재로 둘러싸인 방에서 카페트가 깔린 소파에서 앉아서 신년사를 낭독함으로서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일성주석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신년사를 선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의 무게가 담긴 화법이죠. 그리고 직접 본인이 시청자들 그것은 주민도 될 수 있고 국제정세도 될 수 있겠죠. 그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정책을 대내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건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음으로 직접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9년 신년사 :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그러면서 마주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새 북미 관계 수립과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물론, 단서도 붙었다.

바로 ‘미국의 상응조치’였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9년 신년사 :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끝내 결렬이라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지난 1월 2일, 북한당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을 기록영화로 제작, 방영했다.

전원회의 결과 발표에 이어 백두산 정신을 부각하며 내부적으로 자력부강, 자력번영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북한 기록영화 ‘ 영원히 가리라 백두의 행군길’ : "이 땅위에 천 갈래 만 갈래의 길들이 있다 해도 우리가 갈 길은 오직 하나 백두의 행군길이며..."]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까지 연이어 보여주며 김 위원장의 치적을 강조하고, 우상화에도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북한 기록영화 ‘ 영원히 가리라 백두의 행군길’ : "백전백승하는 가장 정확한 영도로 우리 조국의 강대한 힘과 막강한 지위를 세계중심에 우뚝 올려 세우신 만고 절세의 영웅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그러나 한해 대내외 정책이 담긴 신년사는 생략한 채 지도자의 업적 부각에만 치중하는 태도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처한 곤란함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백두산이라는 것은 북한에서 항일투쟁의 상징으로써 대외 압박에 굴하지 않을 때 가는 특별한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미국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라는 책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백두산 영상을 계속적으로 트는 이유는 향후 대미투쟁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많은 고난이 예상되지만 이 고난을 참고 견딜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요구하는 그런 메세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집권 후 처음으로 생략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전달되는 북한당국의 한해 설계도를 살펴 볼 수 없었던 만큼 북한 정권의 입장과 정책의 방향을 읽어낼 다양한 발표들에 더욱 주목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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