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20주년 특집 ‘개성공단’ (2020.06.15)
 



 
■ 방송일시 : 2020년 6월 15일 (월) 저녁 7시 40분 KBS1
■ 연출 : 박정남
■ 글,구성 : 김근라
 
 
 
▶ 20년 전 6.15 남북공동선언의 상징, 개성공단 
올해 유월이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개성이 지척으로 바라보이는 도라산 전망대를 찾은 박남서 대표. 그는 개성공단에서 장난감 제조공장을 운영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4년 4개월. 닫힌 문은 언제 다시 열릴 수 있을 것인가. 
 
 
“와보지 않은 사람은 개성공단이 엄청 멀다고 생각해 
근데 와보신 분은 이렇게 가깝구나 생각해
가본 분은 남과 북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요”
-박남서 대표(개성공단 입주기업인)
 

2000년 6월 15일. 반세기 만에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났다. 그리고 이루어진 ‘6.15남북공동선언’ 적대와 대립의 역사를 넘어 교류와 협력의 시대로 가자는 취지였다. 네 개의 항목으로 이뤄진 합의문 네 번째 항에는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약속이 담겼다. 그 실천의 산물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을까? 그 막후에는 대북특사 역할을 했던 박지원 전 국회의원, 회담 직전 평양을 오가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던 임동원 전 장관이 있었다. 
 
 
“남북 간에 합의한 것이 그전에도 여러 개 있었지만 
그것이 곧 남북 간 실천으로 이어진 최초의 합의서입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 남측 기업 공단 부지로 ‘개성’이 낙점된 비하인드 스토리 
개성에 남측 공단이 들어선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이었다. 개성은 평양보다 서울이 더 가깝고 군사분계선 최전방의 군사요충지였던 까닭이다. 그 기적 같은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사업을 맡았던 현대 아산 관계자, 그리고 정세현 정동영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다. 
 
 
“2000년 8월에 정몽헌 회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성을 공단으로 해라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저흰 깜짝 놀랐죠”
-백천호 이사(현대 아산)
 

▶ 우리 기업의 돌파구,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와 남한 기업이 만드는 시너지
남측이 자본과 기술을 북측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여 협력한다는 것이 개성공단의 기본취지. 이미 알려진 대로 북측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기대 이상이었다. 의무교육으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손재주가 좋았다. 무엇보다 말과 문화가 같았다. 1~2년의 시행착오 후에는 놀라운 생산성을 달성했다. 중국, 동남아 등 그 어느 곳보다 저임금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했다. 저가 중국제품에 경쟁력을 잃어가던 우리 제조기업들은 개성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거기는 옮기는 게 없어요
양질의 기술자를 계속 쓸 수가 있는 거예요. 싼 노동력을
상상하지도 못하는 가치가 있는 거예요
저는 개성의 가장 큰 가치는 이직률이 없는 게 가장 큰 거라고 봐요” 
-정을연(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 날마다 통일이 이뤄지던 곳,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이었다
개성공단에는 2004년 시범단지 입주를 시작으로 남측 기업 120여 개, 영업기업 200여 개가 입주해 있었다. 북측 근로자 5만4천 명, 남측 주재원 200여 명이 365일 일상을 공유하던 공간, 그곳은 날마다 통일이 이뤄지던 한반도 평화의 공간이었다. 북한의 핵 개발과 무력 도발이 있던 순간에도 기계가 돌아가던 개성공단은 남북 관계 안전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휴전선이 사실상 북상하는 효과가 있었잖아요
휴전선이 올라갔다는 얘기는 그만큼 남북 접경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건 돈으로 환산 안 되는 국민의 행복이에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초코파이 효과론’ 개성공단은 북한 사회 시장화를 촉진시켰다
처음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북측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지급했다. 야간, 연장 근무에서는 인센티브 개념으로 지급했다. 초코파이의 달콤함은 북측 근로자, 나아가 북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개성공단 물자가 장마당을 비롯한 북한 사회에 유통되면서 시장화를 촉진시켰다. 심지어 개성공단 쓰레기까지 거래됐다고 한다. 
 
“개성공단에 가면 미화공들이 있잖아요
산업 쓰레기를 처리하는 그 사람들이 최고 직업이에요 
개성공단 쓰레기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
트럭 하나에 1,500달러거든요”
-김윤애(서울대 연구원, 2010 탈북)
 
이른바 ‘초코파이 효과’로 불릴 만큼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 사회로 번져간 남측 물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개성공단은 자연스럽게 남한 시장경제를 북한 사회에 알리는 자본주의 학습장이자 70년 분단을 극복하는 화합의 공간이었다. 
 
 
▶ 2016년 폐쇄 이후 ‘제재’에 묶여 버린 개성공단은 다시 열릴 수 있을 것인가
2016년 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대북 압박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법적 절차적 과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대통령의 ‘구두지시’임이 밝혀졌다. 그 피해는 엄청났다. 2016년 우리 정부가 먼저 닫아버린 개성공단은 국제사회 제재에 묶여 버렸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던 우리 기업과 근로자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그리고 2018년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하노이 북미회담의 ‘노딜’이후 남북 경협 재개의 희망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 두 정상의 약속에서 시작된 남북경제협력의 상징, 개성공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20년 전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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