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계몽기 가요’  (2016.11.12)[클로즈업 북한]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계몽기 가요’ 화면보기

 
 

      <앵커 멘트>
홍도야 울지마라, 눈물 젖은 두만강.
KBS 가요무대에서 흔히 보는 이런 대중가요들을 북한에서도 부른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북한에선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이런 노래를 이른바 계몽기 가요라 부르며 TV에서도 가끔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런 계몽기 가요는 갈수록 멀어지는 남북한의 정서적 유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 ‘계몽기 가요’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KBS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인 ‘가요무대’.
지난 주 첫 무대를 장식한 노래는 원로 가수이자 방송인인 송해 씨가 부른 <홍도야 울지마라>였다.
<녹취> 홍도야 울지마라(1939년/김영춘) :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그런데 바로 전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에서도 같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녹취>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홍도야 울지마라>는 지난 2001년 KBS 취재진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주민들이 즐겨 부르는 모습이 포착됐던 노래다.
<녹취>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김영춘이 부른 노래.
한국인의 오랜 애창곡인 이 노래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건 1992년부터 시리즈로 제작된 영화 <민족과 운명>을 통해서다. 
<녹취> 北 영화 민족과 운명 10부(1992년) : “아~ 나의 귀여운 누이동생 홍도야”
<녹취>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손님들 앞에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
<녹취> 北 영화 민족과 운명 12부(1993년) :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남한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넣은 이 노래는 이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겐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인터뷰> 권설경(전 북한 예술선전대 가수/2008년 탈북) : “처음에 그 노래를 딱 접했을 때 너무 절절했어요. 바에서 가수가 노래 부르는데 마이크를 뺏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사랑을 팔고 사는~” 엄청 울면서 부르는 거에요. 그래서 그때 저 노래 너무 좋다 하고 막 배우려고 이렇게 했는데 갑자기 선전부에서 <계몽기 가요집>이라고 딱 나왔는데 거기에 ‘홍도야 울지마라’가 있더라고요.”
북한에서 ‘계몽기 가요’는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노래들을 말한다.   
<녹취> “황성 옛터에…”
같은 시기 이른바 ‘항일혁명가요’와 달리 사상성이 없다는 이유로 분단 이후 북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노래들.
하지만 북한은 1990년대 이 시기 노래들을 본격적으로 발굴, 정리하기 시작한다.
<녹취> 北 영화<조선의 별>1부 中 황성옛터 :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나라 잃은 설움과 조국 해방의 희망을 담은 노래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녹취> “김혁이는 이 땅을 부둥켜안고 여기에서 몸부림치면서 살련다. 조선아!!!”
지난 2000년, 190여 곡이 실린 첫 <계몽기 가요집>에 이어, 2008년에는 <계몽기가요 600곡집>을 펴냈다.
북한의 ‘계몽기 가요’는 유행가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동요와 창가, 가곡, 신민요 등을 모두 포함한다. 
<녹취>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하지만 역시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우리에게도 친숙한 흘러간 옛 노래, 이른바 유행가다.
<녹취> 찔레꽃(백난아/1942년) :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1942년, 고향을 그리는 노랫말로 큰 인기를 모았던 백난아의 <찔레꽃>.
<녹취> 타향살이(고복수/1934년)  :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1934년 고복수가 부른 <타향살이>는 특히 만주로 이주한 동포들에게 망향가로 불리던 곡이다. 
떠나온 고향과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 노래들은 북한 당국이 ‘계몽기 가요’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이미 중장년층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인터뷰> 권설경(전 북한 예술선전대 가수/2008년 탈북) : “어르신들 환갑잔치라든가 진갑잔치라든가 이런데 가면 ‘설경아, 눈물젖은 두만강 좀 해보거라’ 하면 (저는) 모르니까요 ‘그 노래가 어떤 노래입니까’ 하고 여쭤보거든요… 어르신님들은 그 노래만 부르면 많이 눈물이 눈이 촉촉해지세요, 어르신님들이.”
입으로만 전해지던 계몽기 가요를 적극 보급한 건 김정일이었다.
<녹취> 조선중앙TV ‘계몽기 가요에 대하여’(2010년2월)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질 뻔 했던 이런 우리 민족음악의 귀중한 유산인 계몽기가요들을 다 찾아주시고…”
특히 2000년대 후반엔 계몽기 가요를 소개하는 TV 좌담프로그램까지 방송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 민족의 음악유산 계몽기 가요’(2008년 11월) : “정말 이 노래를 들으니 우리 인민의 수난에 찼던 과거가 돌이켜 집니다.”
<녹취> 우연오(김원균 명칭 평양음악대학 부교수) :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입니다.)”
TV 프로그램 사이사이 <계몽기 가요 감상시간>이란 이름으로 노래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이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보천보 전자 악단을 통해 본격적으로 계몽기가요 보급에 나섰다.
김정일이 이렇게 계몽기가요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 “통치 전략하고 연결이 좀 있겠죠. 첫 번째로는 김일성 시대하고 차별성을 두기 위해, 김일성 시대 때는 혁명가요, 항일무장투쟁에다 초점을 맞췄었는데, 그것을 좀 다양하게 했던 측면, 또 한가지 측면은 문화의 정통성 이런 측면에서 이것을 많이 발굴하고 보급하고 함으로 말미암아 근대의 역사성이라는 것이 남쪽보다 북한에 있다라는 것에… 의도라고 할까요.”
이 같은 김정일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북한이 자랑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이다.
김일성의 90회 생일을 맞아 2002년 초연된 <아리랑>과 두 번째 공연된 2005년 <아리랑>에는 대표적인 계몽기 가요인 <눈물젖은 두만강>이 등장한다.
<녹취>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여기에 두만강에 대한 북한 특유의 해석도 곁들여졌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아리랑에서는 이제 두만강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국가적 어떤 보호가 없어가지고 민족적 설움을 안고 건너가야 했었던 그런 민족적 설움을 담은 노래로 두만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만강 같은 경우에는 김정숙과 관련된 영화에 중요한 소재로 많이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두만강이라고 하는 이미지들을 다시 한 번 발굴하고 재해석을 하는 것이죠.”
같은 노래지만 가사에 대한 해석에서도 남북간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계몽기 가요에 대하여’(2010년 2월) : “그리운 내 님이여~~~”
<녹취> 박형섭(김원균 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수) : “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실 그런 위인을 절절히 바라고 애타게 갈망하는 그런 당시 우리 인민들의 이런 한결같은 심정을 담은 것으로 봐야한다는…”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위인… 결국 김일성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녹취> 인민의 환희 : “우린 무엇도 부럽지 않아 원수님 계시기에…”
<녹취> 우리의 김정은 동지 : “우리의 행복 김정은 동지…”
김정일 사후 김정은 우상화를 위한 노래들이 연일 방송 화면을 채우는 사이 한동안 뜸했던 계몽기 가요는 지난해부터 다시 방송을 타는 빈도가 높아졌다.
<녹취> 대지의 항구(백년설/1937년 지난해 3월, 조선중앙TV) :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녹취> 목포의 눈물(이난영/1935년 지난해 11월, 조선중앙TV) :   “사공의 배노래 가물거리면…”
전문가들은 계몽기 가요가 지닌 남북의 동질성에 주목한다.
<인터뷰>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 “계몽기가요는 남북이 공유했던 민족 유산이고, 또 남북이 같이 부르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걸 통해서 다름도 이해가 되고, 그 어떠한 다름을 통해 또 다른 같음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어떤 제도라는 측면에서 저는 계몽기가요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열린 KBS <평양 노래 자랑>.
<녹취> “평양~ 노래자랑~~~”
<녹취> 송해(남측 진행자) : “어떻습니까, 남남북녀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녹취> 전성희(북측 진행자) : “안됐습니다, 선생님. 버릇없이 선생님보다 조금 더 커서…”
이 자리에서 우리는 계몽기 가요가 남과 북이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도 그 시절 옛 노래들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확인시켜준다.
<녹취>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미래 세대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만들고 보급하는 데 힘을 모아야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옛 어른들이 불렀었던 이런 노래들이 구심체 역할을 해주는 건 분명히 맞다고 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본다면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가요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좀 만들어가지고 남북한이 같이 갈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특유의 한과 애절한 정서로 표현했던 민족의 노래.
북에서 계몽기 가요로 불리는 이들 노래가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문화적 자산도 창출할 수 있는 민족의 가교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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