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北 로열 패밀리 ‘잔혹사’ (2017.02.19)김정남 피살 北 로열 패밀리 ‘잔혹사’

 
 
 
   <앵커 멘트>
승객들로 붐비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청사.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피살됐습니다.
용의자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이 체포됐지만 배후는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김정은에게 보냈지만, 김정남은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김정남이 살해된 것인지, 또 다른 일가가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세습을 위해 피의 숙청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 일가의 3대에 걸친 잔혹사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김정남은 1971년 김정일과 여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정일이 유부녀이던 성혜림에 반해 이혼까지 시켜 살면서 얻은 아들로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정남의 생애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김일성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고,  김정일은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에게 빠져 어머니 성혜림을 버렸습니다.
1990년대엔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망신을 산데다, 북한도 개방을 해야한다고 직언을 했다가 완전히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남은 일찍이 스위스 유학을 하면서 서구사회를 경험했고, 중국에 오래 머물면서 개혁개방을 체험하면서 북한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가야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이 있었고.”
이후 김정남은 중국과 동남아, 유럽을  떠돌면서 간간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2007년 2월(일본 TBS) :   “(대북 경제재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할 말 없어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복귀한 김정일은 막내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택했습니다.
<녹취> 2009년 6월(TV 아사히)  :  “아버지는 정은을 매우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결정한 것을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과  김정일과의 만남에 김일성이 대노하면서 성혜림은 김정남을 낳은 지 몇년 안돼  모스크바로 떠나야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데다 할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손자로서 제대로 인정을 못받은  김정남은 9살부터 유학길에 올라  해외를 떠돌게 됐습니다.
모스크바의 서쪽끝에 있는 공동묘지.
러시아인들 묘지 사이로 낯익은 한글이 눈에 들어 옵니다.
“성혜림의 묘.” 묘지석 뒷편에는 “묘주 김정남”이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수북히 쌓여 있는 눈 위로 말라버린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은 1974년 모스크바로 간 뒤 그곳에서 살다가 2002년 러시아에서 숨졌습니다.
김정남은 기일이나 명절마다 들러  어머니 성혜림의 묘소를 관리했지만 지난 2011년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이곳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김정은과의 사이가 벌어진데다, 후견인 역할을 하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신변에 불안감을 느낀 걸로 보입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이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편지를  발송했다고 전했습니다.
편지를 통해 김정남은  “저와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주길 바란다”며 “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으며  벗어나는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하소연했다고 국정원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김정남의 이런 애원은  김정은에겐 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펜 윗부분을 돌리자 끝에 뾰족한 침이 튀어나옵니다.
평범해보이는 볼펜이지만,  펜 끝에 독이 묻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 검거된 간첩이 갖고 있던 암살용 무기입니다.
독극물 공격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사용 방법도 간단해 북한이 요인 암살에 사용해 온 고전적인 수법입니다.
<인터뷰> 박상학(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 “옆에서 찌르는지도 모르거든요. 아주 은밀하게, 순식간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방법이니까, 특히 비밀 유지에 최고죠.”
김정남 피살의 배후로는  대남 또는 해외 공작업무를  총괄지휘하는 북한 정찰총국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왜 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말레이시아 국제공항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는지 그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구원 연구위원) : “말레이시아는 북한인들이 드나들기 아주 용이한 곳입니다. 무비자로 현지 사증이죠, 비행장 통과하면서 사증을 받고요. 그리고, 북한에 굉장히 호의적이죠.”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다국적 청부업자들이  김정남을 살해했고, 북한이 배후에서 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였다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살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수석(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연구전략실장) : “김정은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김일성의 가계 백두혈통이라도 가차없이 없앨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를, 소위 말하는 로열 패밀리라든가, 북한의 고위 엘리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그런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포 통치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 했다는겁니다.
북한은 1997년 한국으로 넘어와 살고 있던  김정남의 이종사촌 이한영을  살해할 때도 아파트 현관에서 권총을 사용했습니다.
북측에서 다녀갔다는  증거를 남겨 놓은 겁니다.
<녹취> KBS 뉴스9(1997년 2월) : “괴한들의 총격에 쓰러진 이한영씨, 총격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6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소생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해외에 거주하는  다른 로열 패밀리들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과 같이  프랑스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이한영의 여동생 이남옥은  당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신변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이남옥(CNN 인터뷰) : “나에게는 암살당한 오빠가 있는데, 15년 전에 제네바에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지난해 말에 서울에서 나타났는데 암살당했죠.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워요.”
김정남 피살 사건은 태영호 전 공사처럼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탈북 인사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인터뷰> 고영환(전 북한 외교관) : “사실 저렇게 함으로써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위축감을 주려고 하는 의도는 분명히 있거든요. 아무때나 우리가 저런 사람도 죽이는데, 너네같은 걸 못 죽이겠냐…”
김정일 사망 후엔 언행을 자제하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김정남은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남주홍(전 국정원 1차장) : “그동안 김정남의 행적을 각 국가 정부기관들이 예의주시해왔는데, 상당히 방황… 방랑아의 기질이 있었고, 사실상 북한 내부 권력기반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돌발적인 행동과 언행이 김정은을 자극했고, 오랫동안 신변 위협의 노출성을 경고했던 것인데…”
실제로 김정남은  일본 언론인 고미 요지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서슴없이 비판했고  고미 요지는 이를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김정남은 이 책에서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조차  세습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세습을 한 북한은  국력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  3대 세습은 사회주의 이념과는 맞지 않는다고 저는 이전부터 지적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고미요지(‘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저자/2012년) : “처음에는 3남 김정은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무시당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보니 실망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이죠.”
중국이 김정남의 신변을  보호해 온 것도 김정은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이수석(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연구전략실장)  : “지금은 세력이 별로 없지만 유사시에 북한 내에서 급변사태라든가, 김정은의 정권이 취약하다든가 여러가지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이 개입해야 되는, 개입할 명분으로써는 김정남을 내세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김정남이 살해됐을까?
국정원은  2011년 말 집권한 김정은이  이듬해 초 곧바로 김정남 암살을  명령했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뷰> 김병기(국회 정보위/민주당 간사) : “김정남의 암살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스탠딩 오더, 즉 반드시 처리해야 되는 명령이었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기회를 엿보던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실행됐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김정남의 보호막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되고  고모 김경희도  김정은을 견제하지 못하게 되면서  살해 작전이 실행에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후  궁지에 몰린 김정남이  망명 같은 다른 선택을 하는 걸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터뷰> 이수석(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연구전략실장)  :  “장성택과 많이 사업을 여러가지 하면서 장성택의 후원 하에 중국이라든가 싱가폴이라든가 여러가지 동남아 국가들과의 무역 거래라던가 금융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북한의자금 흐름을 김정남이 잘 알고 있엇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김정남의 망명 신청은 없었다며 이같은 해석에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2015년 5월,  팝스타 ‘에릭클랩튼’의 공연이 열린  영국 런던의 콘서트장.
한 남성이  수행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공연장에 들어섭니다.
짙은 선글라스와  세련된 가죽 재킷.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입니다.
<녹취> “북한에서 지위가 어떻습니까? 동생 김정은과 사이가 어떻습니까?”
쏟아지는취지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 김정철.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흥에 겨워 환호하거나  옆자리의 여인과  귓속말을 주고 받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김정철은 지난 2011년에도  에릭 클랩튼의 싱가포르 콘서트장에서 KBS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철은 가장 오랫동안  김정일의 곁을 지키며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고용희의 2남 1녀 중 장남입니다.
차남 김정은이  3대 권력 세습에 성공하면서  그 역시 후계 구도에서 밀린겁니다.
<인터뷰> 후지모토 겐(전 김정일 전속 요리사/2008년) : “농구 게임을 하다가 경기가 끝났는데요, 경기가 끝난 뒤 정철은 ‘수고했다 수고했어’ 하면서 해산하는데요, 정은은 끝난 다음에 반드시 미팅을 합니다. 그리고 지명을 하면서 ‘동무! 패스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로 해야지’ 그렇게 질타 격려를 할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알고, 기쁘게 할 때도 압니다.”
해외를 떠돌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김정남과는 달리,  김정철은 북한 내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철저한 감시 속에  몸을 바짝 낮추고 지내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판단입니다.
<인터뷰>  이완영(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지난해 10월) : “김정철은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감시받으며 생활하고 있고, 술에 취하면 헛것이 보이고 호텔 방안에선느 술병 깨고 행패 부리는 등 약간의 정신 불안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적 제거의 역사는 1대 김일성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권력 장악과 1인 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각 계파들을 차례로 숙청했습니다.
이어진 2대 김정일 역시  대대적인 정적 제거에 나섰습니다.
피붙이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후계자 경쟁을 벌였던 삼촌 김영주를 자강도로 유배보냈고 이복 동생 김평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던 계모 김성애 세력도 제거했습니다.
3대 김정은 체제,  불안한 통치 기반을  광기 어린 숙청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까지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했습니다.
지난 2015년엔 북한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하며  모습을 드러낸 김평일.
<녹취> 북한 조선중앙TV(2015년 7월 15일) :  “제43차 대사회의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김평일은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뒤 폴란드와 체코 등의 대사로  해외를 떠돌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은 지금은 조카 김정은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후보로 꼽힙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고영환(前 북한 외교관) :  “지금 제일 논리적으로 위험한 건 김평일 대사가 제일 위험하겠죠. 왜냐면,(?) 김경진이는 여자고, 그 남편 김강섭은 김일성 사위고, 그건 일단 한 단계 멀어진거고, 어느 정도 좀 잦아지면 김평일을 소환하든, 암살을 하든…”
아버지가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도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한솔은  아버지 김정남이 후계 구도에서 밀리면서  마카오와 중국 등을 떠돌면서 자랐습니다.
보스니아 국제학교를 거쳐 지난해 파리 정치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녹취> 김한솔(2013년 8얼) : “(무슨 공부 하러 왔어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은 감사한데, 죄송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매우 개방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주싱모(김한솔 친구) : “한솔은 매우 개방적이고, 우리 모두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서양 문화에 정말 잘 적응한 것 같아요.”
김한솔은 이른바 백두혈통의 4대 장자, 북한의 유일 사상 10대 원칙은  국가 최고 권력 지도자는 김일성 혈통 이외에는 그 누구도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정은에겐 김한솔도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입니다.
<인터뷰> 남주홍(前 국정원 제1차장) :  “아버지가 저렇게 무참하게 암살이 됐으면 아들의 활동 반경은 더 줄어들죠. 중국이 아마 더 신경쓰고 보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김한솔은 지난 2012년 한 핀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독재자로 언급해 주목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핀란드 YLE) : “할아버지와 그 (삼촌 김정은)의 일이기 때문에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졸업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국 유학 계획을 접고  지난해 하반기쯤 마카오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마카오 시내, 피살된 김정남의 가족들이 살고 있던 아파트입니다.
김한솔을 비롯한 김정남 가족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녹취> 사무소 직원 : “그들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김정남은 최근까지도 주로 마카오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김정남은 똑똑하고 개방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음식을 좋아해 현지 한국식당에서 종종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동섭(마카오 한인회장) : “작년 12월에도 여기 있었는데요.” -그 때는 잠깐 들른 겁니까? “잠깐 들른 게 아니라 집이 여기인데, 뭘 잠깐 들릅니까?”
김정남의 부인과  자녀들은 이미 언론에 노출된 주거지를 떠나  은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씨의 본처와 자녀는 중국 베이징에, 후처인 이혜경씨와 김한솔, 김솔희 남매는 마카오에 각각 거주 중이며 모두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5일, 김정일의 75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열린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이 등장했습니다.
김정남 암살 사건 직후 공개된 첫 공식 행보입니다.
<녹취>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 “크나큰 음덕은 후손만대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주석단에 앉은 김정은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지난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직후 공식행사에서 보여준 표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김정남 피살 이후  북한 공식 매체들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남’이라는 이름 석자 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깁니다.
광명성절 취재차  입국한 외신 기자들은  김정남과 관련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녹취> 앤더슨 쿠퍼(美 CNN 앵커) :  “김정남 사망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공식적으로 나온 소식이 있나요?”
<녹취> 윌 리플리(美 CNN 특파원/평양 현지 연결) :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고, 나올 기미도 없습니다. 북한에선 김정남이 대단히 민감한 인물이거든요.”
전문가들은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인터뷰> 이수석(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연구전략실장) : “북한 이외에 다른 나라, 다른 테러단체에서 김정남을 살해할 아무런 동기가 없고, 또 백주대낮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공항하에서 살해한다는 것은 어떤 뚜렷한 동기나 목적 없이는 하기 힘든 그런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통치 체제의  잔혹성을 드러낸 이번 사태가 장성택 처형 이후 이어진 북한 내부 엘리트 계층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의  가까운 친척이자 ‘백두혈통’인 김모씨가 가족과 함께 탈북해 한국행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남주홍(전 국정원 1차장) :  “피의 숙청이 지금 절정에 달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체제 균열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외부적으로 봤을 때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신뢰도는 지금 최저점으로 떨어져 있고, 미국과 중국도 상당한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는 그런 국면이라고 봅니다.
일가족 숙청도 서슴치 않는  3대에 걸친 로열 패밀리의 수난사.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북한 김씨 일가의 공포통치는 멈추지 않고 그 강도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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